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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공탁 특례가 도입된 이후 피해자들의 울분이 더욱 커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KBS가 형사공탁 특례와 관련한 판결문을 심층 분석한 결과, 천 건에 이르는 약 천여 쪽의 판결문을 분석했다고 합니다. 판결에 항상 울분이 토해지는 이런 상황에서 형사 공탁금과 그 제도의 개선점의 필요성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1. 형사공탁이란?

 

 

형사사건 재판에서 형량을 결정할 때, 합의 여부가 중요한 요소입니다. 합의가 이루어졌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면 형량이 더욱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합의가 없어도 피고인이 피해자를 위해 일정 금액을 법원에 맡길 수 있는 사법 절차인 '형사공탁'이 있습니다. 법원은 형사공탁도 피해 회복을 위한 피고인의 노력으로 보고 양형 판단에 참고하게 됩니다.

 

지난해 12월부터 도입된 '형사공탁 특례' 제도에서는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받지 않아도 공탁이 가능해졌습니다.

 

이전에는 공탁서에 피해자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등 인적사항을 기재해야 했지만, 이제는 사건이 진행 중인 법원과 사건번호, 사건명만으로 공탁이 가능하도록 개정되었습니다.

 

형사공탁 배경

 

피고인이 피해자를 찾아가 인적사항을 알려달라고 부탁하지 않아도 손쉽고 신속하게 공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주로 피해자의 보호를 위한 것입니다. 피고인이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나 사생활 침해, 개인정보 유출 등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 성범죄와 같이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에도 합의를 못 한 상황에서라도 공탁이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피해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었습니다.

 

 

2. 제도 개정의 부작용

 

 

피해자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공탁이 가능해지면서 '기습 공탁'이라는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기습 공탁은 피해자가 모르는 사이에 변론이 종결된 뒤에 갑자기 공탁이 이루어지는 사례를 의미합니다.

 

▶ 피해자는 가해자의 공탁에 반대 의사를 밝힐 권리나 방어권을 상실할 수 있습니다.

 

▶ 공탁을 양형에 반영하느냐 마느냐는 재판부의 판단에 따르지만, 진지한 사과나 반성 없이 공탁이 이루어지고 재판부가 이러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감형을 해주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한 제도로서의 목적에 어긋날 수 있습니다.

 

▶ 돈으로 형량을 줄인다는 비판과 함께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수 있습니다.

 

 

3. 감형

 

피해자-합의-없는-형사-공탁-감형-사유-될까?
개정된 공탁법

 

 

기습공탁

 

분석에 따르면, 피고인의 일방적인 공탁이 이뤄진 법원 판결은 988건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중 558건은 선고 후 2주 이내에 공탁이 이뤄진 것이며, 심지어 130건은 선고 후 사흘 이내에 공탁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는 피해자가 재판부에 거절 의사를 표현할 수 없도록 하는 '기습 공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분석 결과, '기습 공탁'의 80.2%는 감형 사유로 그대로 고려되었으며, 피해자 입장을 고려해 '기습 공탁'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일부만 감경 사유로 참작한 판결은 19.8%에 그쳤습니다.

 

이러한 결과로 인해 피해자는 피해 회복에 대한 결정권을 완전히 배제당하는 결과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공탁금 액수에 따른 형량 비교

 

분석에서는 다른 변수 없이 오직 공탁만으로 형량이 바뀐 2심 판결문을 중심으로 조사했습니다.

 

전체 334건 중 55.7%의 판결에서 형량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공탁금이 500만 원 이하일 때는 평균 7.8개월 줄어듬

* 1,500만 원에서 2천만 원 사이일 때는 평균 11.5개월 줄어든 것

 

또한, 공탁금이 많을수록 감형 폭이 더 크게 나타났습니다.

 

 

4. 구체적 사례

 

 

case 1> 지난해 5월 강원도에서 초등학생 두 명과 성매매를 한 성인 남성 여섯 명이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검찰은 한 명에게는 징역 20년, 세 명에게는 징역 15년을 구형했습니다.

 

그러나 일심 재판에서 이들은 모두 집행유예와 벌금형에 그쳤습니다.

 

피고인들은 합의하지 않은 피해자에게 1억 4천여만 원을 공탁한 것이 참작되었다고 합니다.

 


 

case 2> 어느 카페 주인이 술을 마시던 지인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일심 재판부는 징역 17년을 선고했지만 항소심에서는 징역 13년 4년으로 감형되었습니다.

 

이때는 선고 전 피해자 앞으로 건 공탁금 3억 5천만 원이 참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case 3> 살인 사건의 피고인이 피해 유족 앞으로 공탁금 3억 5천만 원을 맡겼는데, 항소심에서 형량이 4년이나 줄어들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피해 유족은 선고 당일 알게 된 공탁금 탓에, 지난 1년 동안 피고인에게 엄벌을 요구한 탄원이 물거품이 됐다고 하소연했습니다.

 

 

5. 작량감경

 

 

재판부가 범죄 정상에 참작 사유가 있을 때, 법관 재량으로 형기를 줄여주는 것입니다.

 

분석 결과, 피고인의 일방적인 형사공탁을 재판부가 금전을 통한 피해 회복과 관련하여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양형에 반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6. 형사공탁 악용

 

 

취재 결과에 따르면, 피고인들이 형사공탁을 악용하여 형량을 줄이는 실태가 있었습니다.

 

분석 대상은 강도, 폭력, 성범죄 등 17종의 사건으로, 피고인의 일방적인 형사공탁이 이루어진 판결들입니다.

 

전체 대상인 988건 중에서 피고인이 선고가 임박해 법원에 공탁금을 맡긴 사건은 558건이었으며, 이들의 절반 이상이 법원 선고 2주 이내에 '기습 공탁'을 진행하여 피해자가 공탁에 대한 거절 의사를 피력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게다가 선고 사흘 이내에 이뤄진 공탁 13% 수준을 차지하였습니다. 

 

 

7. 피해자 입장

 

 

① 피해자도 공탁을 할 경우 형량을 올릴 수 있게 되는지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② “형량을 사고, 팔 수 있다"는 관념이 형성되어 가는 초입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③ 피해자가 없는데도 어떻게 그 돈에 대해서 얘기를 하냐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④ 피해자들이 원하지 않는 기습적인 공탁으로 인해 더 많은 고통을 받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⑤ 법원에 접수된 형사공탁은 형사공탁 시행 1년 동안 14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개선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형사공탁 관련 정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범죄 피해자의 회복이 가장 중요한데, 피해 회복 당사자인 피해자가 배제되지 않도록 제때, 제대로 된 공탁 정보가 제공되어야 합니다.

 

● 판결 선고 전 공탁 수령 의사 확인 등을 통해 피해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 재판부도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단순히 금전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공탁 경위 등을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양형에 반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 현재 국회에서는 관련 법 개정안이 발의되었습니다.

 

● 대법원 양형위원회도 위의 분석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공탁 양형 인자의 추가 정비 방안을 심의하고 이를 반영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